들어가며.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 개발자로서 대체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 분의 추천과 티켓 제공으로 HyphenCon 2026,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CTO 되기'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CTO를 꿈꾸진 않지만, 참석을 결정한 이유가 있었다. 개발자 커리어의 끝에 CTO가 있다면, 그 과정에는 반드시 '수준 높은 개발자'라는 단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CTO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역량을 쌓아야 하는지, 어떤 액션을 해야 하는지 등 이에 대한 힌트가 곧 수준 높은 개발자가 되는 길이지 않을까 싶어 참석을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CTO에게 필요한 역량은 AI 시대 모든 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이었다.
요즘은 AI 시대.
곧바로 역량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잠시 시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느냐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현업과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여전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에 따른 이슈들도 다양하게 파생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도 이렇다.
- 할루시네이션으로 인한 부정확한 정보 증가
- 보안 사고 위협
- 저작권 위반 또는 편향적 콘텐츠 제작
- 고용 축소와 업무 역할 변경
- AI 비용의 급증
- 리더십의 위기
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이슈들이 있을 것이다. AI를 직접 개발하며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대처하는 태도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마지막 항목, 리더십의 위기였다.
AI 시대 리더십의 변화와 위기.
개발자가 아닌 직군에서 실제로 얼마나 AI를 사용하는지 알 수 없지만, AI를 도입한 곳이라면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AI가 더 똑똑해지면서, 휴먼 리더십에 위기가 찾아왔다.
리더십의 단계적 변화
1단계 - 암묵적 위기 : 권위 잠식의 시작 "AI가 이게 맞다고 그랬는데…"
리더의 말을 수용하지만, 팀원의 마음속에서 불신과 의문이 싹트기 시작한다.
2단계 - 공개적 충돌 : 상호 신뢰성 위기 "AI가 이게 맞다고 그랬습니다!"
팀원이 리더의 지시에 공개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3단계 - 권위의 전도 : 최종 권위자가 AI "AI가 이게 맞다고 그래!"
이번엔 리더가 팀원에게 AI의 제안이 맞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4단계 - 상호 의존 : AI로의 권위 이전 "AI도 이게 맞다고 그러네요"
인간끼리 회의를 마친 후, 그 결과물을 AI에게 검토받는다.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사실상 AI로 바뀐다.
5단계 - 리더십 전환 : 새로운 균형 정립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든 질문을 AI에게 먼저 물어보고 업무를 시작한다. 사실상 사람이 필요 없는 단계다.
연사자 분께서는 현재 현업이 2.5단계쯤 된다고 하셨는데, 나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 정도까지는 AI가 인간이 못 봤던 길을 제시하기도 하고, 건강한 토론과 검증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권위가 전도되어 모든 것을 AI에게 컨펌받기 전까지 이행하지 않는 지점부터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부디 4~5단계까지 갈 일이 없었으면 싶지만,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다.
AI 시대 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들.
1. 도메인 지식과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
기술적 성공, 즉 뛰어난 개발이 곧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이전 회사에서 겪었기 때문에 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비즈니스가 실패하면 기술적 성취도 빛이 바랜다는 걸 느끼고부터는, 개발자도 시장의 흐름과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해야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지적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2. 기획력
이제는 기술의 구현(코딩)을 넘어, 유연한 사고로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1인 개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럴 때 기획력이 더욱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내가 쓰고 싶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과 비즈니스를 위해 '왜 이 기술이 필요한지'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인상 깊었다.
3. 기술력
기술 트렌드는 계속해서 변하지만, 꾸준히 쌓아 올린 기본기는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초 체력은 한 분야를 깊이 파야 얻을 수 있고, 거기서부터 인접 분야로 확장하는 것은 덜 어렵다. 엔지니어링 품격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짠 코드가 동료에게 재앙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이 짠 코드라도 내가 맡은 순간 '내 책임'이며, 이를 정상 작동시키는 것이 엔지니어의 의무라는 말도 와닿았다. AI 시대에 단순 구현은 쉽게 달성되는 만큼, 중요한 건 디테일이며 이를 챙기는 끈질긴 집념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이 많이 됐다.
4. 리스크 감각
완벽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기술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고, 이를 고려하며 개발하다 보면 기술 부채가 쌓이게 된다. 중요한 건 그 부채가 언제 어떤 리스크로 돌아올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 부채를 인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 문제가 되는 시점을 알고 있어야 순간마다 적절한 트레이드오프를 고려해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이 역시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5. AI 역량
AI를 단순히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설계하고 통제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LLM이나 agent의 아키텍처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넘어 모델의 한계와 리스크를 인지하고, AI 비용구조와 ROI 판단 능력,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능력까지 필요하다. 결국 AI가 제안하는 아키텍처나 코드를 맹신하지 않고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AI와 사람의 역할 경계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업무를 AI에게 위임할지, 자율성의 허용 범위와 제한 범위는 어떻게 둘 지를 정의해야 한다.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가치 판단이라고 했다. 인간사회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많고, 이를 AI에게 맡기기보다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역량을 기르기 위한 방법도 제시해 주었는데,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직접 많이 써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으로만 트렌드를 쫓는 것과 직접 만들어보는 것은 다르다. 전문가도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AI의 한계를 알 수 없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만들어보는 것도 좋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부터 개발, 리딩까지 경험하며 소프트 스킬을 함께 익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셨다. 사실 그동안 사이드 프로젝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 현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AI 덕분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훨씬 쉬워진 만큼, 이제부터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리더십
대부분의 경우 협업이 필요하다. 1인 개발자여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협업해야 할 순간이 온다. 최종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람 간의 신뢰를 조율하는 역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소프트 스킬이 중요하다.
이제는 AI를 매니지먼트하고 통제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사람과 AI, 그리고 생태계를 연결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기술적 난제를 AI가 사람보다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를 좌우하는 건 팀원의 동기 부여와 성과 목표 관리 능력이 될 수 있다. 팀원의 멘탈을 관리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AI를 도구로 활용해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는, 말 그대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십이 필요해진 것이다. AI가 대부분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일수록 의사소통, 조율, 공감 능력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마치며.
AI가 코딩을 대신하는 시대에 개발자의 경쟁력은 '얼마나 코드를 잘 짜느냐'가 아니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코드를 잘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코드를 작성할 수 있어야만 AI가 이를 기반으로 더 완성도 높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AI의 제안을 검토하고 판단하려면 결국 코드를 잘 짤 수 있는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그 위에서 도메인 지식, 기획력, 리스크 감각, AI 역량, 리더십까지. 결국 이번 컨퍼런스에서 이야기된 역량들은 CTO만의 것이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컨퍼런스를 듣고 난 후, 뿌옇던 불안감이 좀 더 명확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막연히 두렵기만 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를 알게 된 셈이다. 불안감이 있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필요한 역량들을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AI 시대에도 충분히 개발자로 재밌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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