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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IT/리뷰 및 회고

2025년 회고: 멈춤과 방향

by yjin_fe 2026. 1. 11.

들어가며.

사실 이 글을 꼭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미 스스로 회고를 한 뒤, 두 차례의 회고 모임에 나가며 2025년에 대한 회고는 완료했기 때문이다. 단지 이것을 글로 정리해서 남기는 것이 문제였다. 순탄히 흘러갔던 1년이었다면 정리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전반기는 회사 일을 비롯하여 벌여 두었던 일로 너무나 바빴었지만, 정확히 반대로 후반기는 너무나 개인 시간이 많았다. 이토록 1년 사이에 급박한 삶의 변화는 코로나 이후 다소 오랜만인지라, 좀 더 회고를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내게 임팩트가 컸던 키워드 중심으로 회고를 정리해보려 한다.

  • 회사
  • 개발
  • 컨퍼런스
  • 커뮤니티
  • 여행
  • 운동
  • 독서
  • 공백

 

회사.

25년 6월을 기점으로 경영 악화로 인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유난히 더웠던, 무더운 여름의 태양열이 태워버린 건 나뿐만 아니라 회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권고사직으로 프로덕트 팀 전체가 퇴사하게 되기 전까지, 성과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달렸다. 분기가 지날수록 주중과 주말의 경계, 퇴근과 출근의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노력에 대한 보상은 크게 주어지지 못했다.

 

사실 이미 2월에 한 차례 권고사직이라는 칼바람이 불었고, 꽤 많은 수의 인원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6월의 이벤트는 이미 예고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예고된 결말을 맞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어, 최대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다행히 당시 남아있던 프로덕트 팀 동료 모두와 의견이 일치하여 기존의 서비스(프로젝트)를 다시 재고하게 되었고, 보다 수익성 있는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 중요한 건 ‘어떻게?’ 였다. 기존의 서비스를 아예 종료하기에는 마케팅이나 브랜딩 등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할 일들이 많았고, 우리에게 부족한 건 시간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기형적이게도, 기존 서비스에 붙은 거대한 기능(Feature)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피벗을 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여 출시하게 되었다.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검증을 한 결과 나온 Eapy Slide는, 확실히 기존 서비스 Eapy Canvas보다는 유저 반응이나 지표가 조금 더 좋았다. 아쉬운 것은 시간이었다. 불과 2개월만에 나온 제품이었으나 나름 완성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빠르게 만들어진 MVP 성격의 제품(feature)이었기에 충분한 성과지표를 만들어내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고, 5월까지 총 3~4개월 정도 최대한 제품 고도화를 하여 유료 버전까지 출시를 하였으나 그 결과를 지켜볼 시간과 기회는 주어지지 못했다.

 

약 3년 가까이 지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결말이 다소 아쉬운 건 아마도 타의에 의한 비자발적인 마무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약 1년 가까이 Eapy Canvas부터 Slide의 피벗까지 너무 쉼 없이 달린 탓일까, 일종의 번아웃이 왔다. 25년의 하반기는 조금 휴식을 하며 다시 일이 하고 싶어지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개발.

회사를 다니며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AI 도구를 비교적 소극적으로 이용하여 개발을 했다. 흔히 말하는 바이브 코딩처럼 온전히 AI에 맡기기엔 다소 복잡도가 있고 난이도가 높은 개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사 후에는 아주 간단한 정적 웹사이트 개발은 온전히 바이브 코딩으로 해보기도 했고, 한두 건의 과제 역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구현해보기도 했다. 지금은 잠시 현업에서 떠난 상황이지만, 어떤 트렌드 혹은 흐름과 너무 멀어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틈틈이 관련 세미나를 듣거나 강의를 들어보기도 했다.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복잡도, 풀고자 하는 문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AI는 활용하기에 따라 나름 생산성을 높여주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해당할 정도까지 고도화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AI가 생산한 코드들의 최종 결정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므로, 실제로 큰돈이 오가는 프로덕션 레벨의 프로젝트에서는 아직 AI로 온전히 개발자가 대체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주관이므로 전혀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직은 작업을 도와주는 도구 혹은 조력자 정도라고 생각한다.

 

퇴사 후 온전히 몇 달간 개발을 쉬어봤더니, 개발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나는 생각보다 개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슬슬 취업 준비를 하며 채용 과제를 수행할 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스트레스 받는 채용 과제일 텐데, 과제를 하는 게 재밌었다. 코드를 치고, 화면 UI를 비롯하여 로직을 짜고, 개발을 하는 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이래서 개발자 하려고 했었지.’ 싶었다. 그제야 실은 내가 번아웃이었구나 싶었다. 단순히 일을 하기 싫다기 보다는, 휴식을 하며 들숨 날숨을 하는 게 괴롭지 않은 나만의 호흡 템포를 되찾는 것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다시 재밌게 개발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퍼런스.

올해 하반기에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각종 컨퍼런스와 세미나에 참여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쳐 하반기에만 총 12개의 컨퍼런스(세미나)에 참여했다. 회사를 다녔다면 분명 이렇게 많고 다양한 컨퍼런스에 참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큰 주제는 AI와 커리어였다. 최근 내 최대 관심사가 그대로 반영된 주제들이었는데, 혼자 집구석에 박혀 있었거나 회사에 갇혀 개발만 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 매우 값진 시간들이었다. 인상 깊었던 수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은 오프라인으로 직접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대면 활동 자체가 주는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꾸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좋다. 거창한 발표가 이루어지는 컨퍼런스만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할 일을 하는 모각작이나 모각코 등의 활동에서도 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는 AI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남들은 AI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일부 컨퍼런스에 대한 후기글을 작성해두었기에, 이 글을 읽고 후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글들을 보시면 좋을 것 같다.

2026년에도 다양한 컨퍼런스에서 또 다른 인사이트들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커뮤니티.

2024년 4분기에 글또라는 모임에 처음이자 마지막 기수로 참여했고, 2025년 3월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활동이 종료되었다. 개발자 인맥이 별로 없던 나에게는 수많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발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로부터 좋은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어 무척이나 좋았다. 만약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정말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글쓰기 모임이 무엇을 그리 바꿨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또 내에서 파생된 이런저런 소모임들이 그 역할을 했다.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취미나 놀이 성격의 모임부터, 삶과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 해볼 수 있었던 커피챗들, 개발 서적 이외의 다양한 서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던 북클럽 등 다양한 모임들. 이 경험들이 부피가 큰 25년도의 생을 만들었다.

 

글또 이외에도 멘토링을 했던 F-LAB의 커뮤니티에서도 여러 개발자들과 네트워킹을 할 기회가 있었고,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분들과 서로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 동안에는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눌 일이 적었는데, 연차별로 하게 되는 고민이 다르고, 또 연차마다 서로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구나 싶었다.

 

커뮤니티 활동의 가장 좋은 점은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의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큰 테두리가 개발자로 묶여있기에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일종의 동질감이 있다. 그러나 세세히 들여다보면 나와 너무도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을 받게 된다. 부디 그들도 내게서 얻었던 것들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

25년도를 시작하기 전에 세웠던 계획 중 ‘여행’이 있었다. 어디가 되었든 좋으니 적어도 3회 이상은 여행을 하자고 했는데, 운 좋게도 초과달성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로의 여행을 좋아하는데, 말 그대로 새로운 시공간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좋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리프레시를 하기에 최적의 수단인 것 같다.

 

2025년 일 년간 해외 여행을 2번, 국내 여행을 3번 했다. 해외 여행은 일본만을 다녀왔는데, 역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후쿠오카와 나고야를 여행했다. 짧게 2박 3일로 다녀왔지만 각각의 여행에서 약 7~8만 보씩 걸었다. 유명 여행지도 좋았지만,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해서인지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부족했고, 다시 방문하겠다는 다짐을 안 할 수 없었다. 거의 여행을 넘어서 탐험을 하고 온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긴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도 탐험가는 못 했을 것이다.

 

국내 여행은 포항과 고성, 속초를 다녀왔는데, 고성은 너무 취향에 맞아서 속초를 갔을 때에도 방문해서 총 3번이나 다녀왔다. 맹그로브 고성이라는 곳을 글또에서 알게 되었는데, 워케이션의 성지였다. 반드시 ‘일’ 때문이 아니어도, 혼자 사색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무척 좋은 곳이다. 내년에도 한 번쯤은 방문할 생각이다.

 

26년도에는 과연 얼마나 여행을 할 수 있을 지 감이 오질 않지만 적어도 국내 여행과 해외 여행 한 번씩은 다녀올 예정이다. 여유가 된다면 항상 갈망했던 ‘여름에 계절 반대인 나라(아마도 호주) 다녀오기’를 꼭 하고 싶다.

 

 

독서.

읽은 책 목록에 자기 계발과 IT 개발 카테고리만 존재했던 내게, 정말 다양한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던 2025년이었다. 완독한 비개발 서적은 총 10권이었고, 카테고리는 무척 다양했다. 소설, 에세이, 인문/철학, 사회학, 뇌과학, 금융/경제 등.. 하나부터 열까지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고, 덕분에 책을 읽는 습관을 얻을 수 있었다.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을 접하다 보니, 하나하나 모두 인상적이었다고 느꼈지만, 특히나 인상깊게 읽었던 책은 ‘싯다르타’였다. 스스로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용어인 ‘메타인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고, 지금도 아직 이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26년도에는 절반 이상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백.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 25년 하반기부터는 커리어의 공백기였다. 함께 퇴사했던 동료들 중에는 무척 기민하게 움직여 빠르게 재취업을 한 동료도 있었고, 잠시 일정 기간 쉬다가 취업을 한 동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좀 달랐다. 당연히 재취업을 해야 하니까 필요한 서류 정리도 해야 했었고,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한 나름의 여러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할 일들이 쌓여있었음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서두르지 못했다.

 

누가 보면 ‘궁상떨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현실 감각이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어쩌면 번아웃이 온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당시에 지쳐있었다. 대략 2년 가까이, 거의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들이었는데, 강제로 멈추고 나서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가장 큰 건 방향성에 대한 것이었다.

 

‘달려야 한다’고 해서 달렸는데, 멈추고 보니 스스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같은 상황이었다. 개발자로서의 방향성, 커리어의 방향성, 인생의 방향성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게 없었다. 말 그대로 방황이 시작되었다. 이미 달려온 길이 있는데, 그대로 달리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2018년에 일본에서 처음 시스템 엔지니어로 개발자의 삶을 시작하면서 2020년 코로나 이슈로 멈추게 되기까지. 그때와 무척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이슈로 귀국 후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전향을 결심했던 시기에 고민했던 것과 비슷한 고민을 또 하게 된 것이다. 그때와는 참 많은 것들이 달랐지만,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최소한의 할 일을 하며 내면 탐구에 집중했던 시기에, 우연히 친구와 나눈 이야기로 공백은 더 길어졌다. 이 나이에, 이 시기에 회사를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이런 시간은 또 오기 힘들다는 것. 기왕 이렇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할 일’에만 쏟는 것은 너무 아까운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남들 다 열심히 재취업을 하는 모습을 보며 슬슬 다시 달릴 준비를 해야지.. 하며 차 키를 꽂고 시동을 걸려던 찰나에 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시동을 끄고 키를 뽑아버렸다. 보통 우리는 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기 전에, ‘어디로 가겠다’는 목적지를 설정한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그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비교하고, 최적의 루트를 찾아간다.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킬 수 없다. 그저 길이 닿는 대로 운전하다 보면, 결국 원치 않는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딱 내 상황이 그런 상황이었다. 스스로 목적지와 방향을 재설정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분명 내가 원하지 않던 이상한 곳에 도착하리라.

 

공백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더 가지려 노력했다. 강점 검사도 해보고, 다시금 삶의 지도를 자세히 그려보기도 하며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고민했다. 참 아쉽게도, 아직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 아직까지 명확한 목적지를 찾지는 못했다. 다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 가고 싶지 않은 목적지는 알게 된 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여전히 고민은 멈출 수 없지만, 이제는 슬슬 움직이며 생각할 때인 것 같다. 2026년에도 아마 고민이 끝나지 않겠지만,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